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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백원서원 복원
남구현(백원서원 복원추진위원)
[2020-03-31 오후 3:04:00]
 
 
 

조선시대 최고의 효자(孝子) 모암 김덕숭(金德崇)선생이 진천인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이유 중 하나는 선생을 배향했던 백원서원(百原書院)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1871(고종 8) 대원군은 강력한 조정의 권위정립을 위하여 전국의 서원 650개중 47개만을 남기고 철폐하였다.

백원서원은 임진란 후 독송재 신잡 선생이 우리지역의 학문과 충절이 높았던 인재 이종학, 모암 김덕숭, 이여와 이부의 학행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1597(선조 30)에 설립하여 사액서원(1699, 숙종 25)을 받았다.

서원철폐 후 정확히 150년 세월이 흐른 지금 백원서원이 왜 복원·보존되어야 하는 역사적 당위성을 알기 위해서는 이곳에 모신 네 분의 행장(行裝)을 살펴봄으로써 그 역사적 근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인재 이종학(李種學) (1361~1392)은 고려 말 목은 이색의 둘째아들로 태어났다. 우왕이 이성계에 의하여 폐위를 당하자 강력히 반발하여 혁명세력인 조준, 정도전, 남은 등을 탄핵·파직하려 했으나 정몽주가 피살되면서 유배의 길을 걸었다. 그의 강직한 충절과 절개는 만세의 표상으로 백원서원에 배향이 된 인물이다.

모암 김덕숭(金德崇)(1373~1448 )은 인재 이종학, 포은, 목은 선생에게 수학하여 목천현감, 한산군수를 지낸 후, 퇴임 후 부모님을 봉양하기 위하여 사직하여 부모님을 지극정성 부양하였다. 세종 261444년 공은 72세에 아버님은 95세 당시 눈병치료차 초정으로 가던 중 공의 효행을 익히 들어온 세종은 쌀, , 고기, 꿩 등의 하사품을 내린 후 북평(성평)에서 덕숭부자의 인사를 받은 세종은 누가 아버지인지, 아들인지 구분하기 어렵다고 하였다. 모암의 효행은 상감행실도에 자세히 적혀있으며 이 사실을 전해들은 중국 천자는 천하대효(天下大孝)라는 유서를 내리었다.

송애(松崖) 이여(李余)선생(?~1566)은 목은 이색의 6대손으로 인조(仁祖)께서 동궁시절 매제 이언적 선생과 함께 경연(經筵)에 입시(入侍)하여 주역을 강독(講讀)하셨으며, 중종31(1536) 화담(花潭)서경덕과 함께 밤새 강론이 끝난 후 공의 학식에 화담은 상탄을 금치 못하였다고 한다. 고향 사자봉에 돌아와 흙단을 쌓고 매월 초하루이면 북쪽을 바라보며 배곡을 하였으니, 선생의 충의, 덕용, 도학에 대하여 백원서원에 경모 배향하게 되었다.

행원(杏圓) 이부(李阜)선생(1482~?)은 사림파 조광조와 교유하면서 도학을 강론하셨으며, 중종 14(1519)현량과로 병과급제한 후 병조좌랑으로 있을 때 중종반정공신에 대한 삭훈을 상소하였으나 중종이 허락하지 않아 사직한 후 기묘사화의 해를 면하게 되었다. 1545년 명종 즉위년에 현량과 병좌랑에 제수 받았으나 이를 거절하고 평생 주경야독 학문에만 몰두하여 밭 갈고 낚시하여 고향의 후진양성에만 매진하시다 임자년(1552) 71세에 돌아가셨다.

백원서원의 어원은 효()는 백행지원(百行之原)이라는 뜻에서 유래되었다.

백원서원 건립이후 4백여년 동안 수백 명의 효자, 학자, 충신을 배출하여 명실상부 우리 고장 생거진천의 문향, 충절, 교육의 역사적 산실이었다.

이렇듯 충효절의와 학문덕행이 탁월한 사위선생(四位先生)을 배향(配享)한 백원서원의 역사적 의의를 살펴볼 때 복원의 중요성과 필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며, 비록 세월이 흘러 서원이 현대교육기관기능을 온전히 대체할 수는 없겠으나, 전통문화 체험과 청소년들의 교육장으로 활용하여 점차 잊혀져가는 윤리의식과 충효사상을 고취하고 국가관과 충효의 고장 생거진천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정신문화역사의 장소로 활용한다면 우리의 후손들에게 문화시민으로서의 자긍심을 심어줄 수 있을 것이다.

이종학의 충절(忠節), 김덕숭의 효행(孝行), 이여의 경술(經術), 이부의 학문(學文)이 곧 우리고장 교육의 모범이며 후학의 본이며 생거진천의 명실상부 문화역사전통의 계승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백원서원 복원추진은 강릉김씨, 한산이씨, 고성이씨 문중 및 지역 유지들에게 꾸준히 이어져 왔으며 매년 진천유림 등에 의해 제향이 이뤄져오고 있다.

백원서원의 복원노력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고, 1992년 백원서원지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2009년 진천군 의회 백원서원 복원에 관한 군정질의, 2012년 백원서원지 토지매입, 2013년 백원서원지 발굴조사, 2015년 백원서원 기본정비계획 용역조사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이어져 왔다.

최근 2018년 백원서원 보존회(회장 백원평) 단체등록, 복원추진위원회가 발족되어 진천군수, 군의회 의장님을 방문하여 백원서원 복원정비사업계획 설명회를 가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1992년 민선 1기부터 시작되어 현재에 이르기까지 꾸준히 이어져온 복원사업이 민선 7기에는 기필코 중장기적인 복원계획이 수립되어 산업경제 성장에 발맞춰 정신문화적 삶의 향상도 함께 동반성장 해나갈 수 있는 생거진천 문화 강군(文化强郡)-백원서원(百原書原) 복원(復原)이 되기를 소망해본다.

충북 유일의 교육문화특구인 생거진천에 단 한곳의 서원이 없다는 현실에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하며 문화강군-백원서원의 조속한 복원을 9만 진천군민과 함께 기대해본다.

 

진천신문(jincheo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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