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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맑은 새 아침!

이호성(충북 청주시 용암동)

기사입력 2021-02-10 1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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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람은 정신과 육체로 이루어져 있다.

사전을 찾아보면, “정신을 주관하는 것을 혼()이라 하고 육체를 주관하는 것을 백()이라고 한다.” 고 나와 있다.

시체라는 것은 정신이 깃들지 않은 죽은 몸뚱이를 일컬음 이다.

사람이 죽었을 때 혼백(魂帛)을 모신다는 것은 혼()을 모신 마포(麻布)나 비단을 뜻하는 것이며, 여기에서 백()은 육체를 주관하는 넋 백()자가 아니고, 비단 백()자를 썼다.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정신과 육체가 분리 되어 정신이 육체에서 떠난다는 의미(意味)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영정(影幀)은 망인의 사진으로 혼()을 대신하는 뜻이라고도 하겠다.

사람이 죽었을 때 초혼(招魂)을 부른다고 한다. 다시 말하여 유교 의식에서 사람이 죽어 혼()이 그 사람을 떠났을 때 지붕위에 올라 그 사람이 입었던 옷을 흔들며, ‘그 사람의 혼()이 육체에 다시 돌아오라는 뜻에서 북쪽 하늘을 향해 돌아 올 ()’자를 세 번 부르는 의식을 우리는 초혼(招魂)이라고 하였다.

우리 사람은 무엇보다 혼()을 중요시 하고 있다. 사람과 짐승이 사뭇 다른 이유도 짐승보다 혼()의 세계를 중요시 하고, 조상이나, 부모님의 얼을 자손들이 잘 지켜 나가고, 되살리는 일이 짐승의 세계와는 인간(人間)의 세계가 다른 것이며, 天地之間 萬物之衆에 최고로 귀()하다는 이유일 것이다.

얼마 전 6.25때 다부동 전투에서 공을 세우셨던 4(四星) 장군, 백선엽 장군께서 100세를 일기(一期)로 세상을 떠나셨다.

나라를 위해 공()을 세웠던 일도 중요하고, 100세까지 일생(一生)을 사셨던 모습도 우리에게 주는 감동이 크다.

우리에게 감흥을 주고 계신 연세대 철학 교수, 김형석 교수님도 100세를 넘긴 연세로 아직까지도 또렷한 정신으로 신문에 칼럼을 게재하고, 세상 모든 사람에게 감흥을 주고 있는 것을 생각 해 보면, 참으로 우리 산 사람들에게 크게 귀감(龜鑑)이 되시는 분들이시다.

우리는 60세를 육순(六旬), 70세를 칠순(七旬)이라 한다.

61세를 환갑(還甲)이라 하고, 71세를 망팔(望八), 81세를 망구(望九), 다시 말하여 팔십을 바라보는 나이, 구십을 바라보는 나이라는 뜻이다.

88세를 미수(米壽), 99세를 일백() ()자에서 한 일()자를 뺀 99, 백수(白壽)라 하였다.

일생을 90을 넘어서까지 산다는 것이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나이가 많다고만 그냥 좋은 뜻은 아니련만, 이 세상 값지게 살다가, 값지게 가는 것이 또한 인생(人生) 보람일진대, 치매(癡呆)없이 건강하게 살다가, 보람된 삶으로 이 세상 끝을 맺는다면, 이 보다 이 세상 보람된 일이 없을진대, 남은 인생(人生) 우리들의 과제인 듯 싶다.

어떤 분은 일상(日常)을 살아가면서, 자기의 좌우명(座右銘)참용기로 하였다 한다.

참자!”, “용서(容恕) 하자!”, “기다리자!” 이다.

우리가 일생(一生)을 살면서 많은 일을 겪게 된다.

어찌 순탄한 일만 있겠는가?

나는 여기에서 순백(純白)의 깨끗한 영혼(靈魂) “담비를 적어 본다.

조금 더럽혀졌다고, 함부로 자기 몸을 자포자기(自暴自棄)는 하지 말고,’ ‘물이 깨끗하면, 갓 끈을 씻고, 더러우면, 발을 씻어라!’ 라고, 중국 시인(詩人) 굴원도 말 하지 않았던가?

이 세상 상처 없는 영혼(靈魂)이 어디 있으랴!

우리의 정신(精神)을 주관하는 혼()과 육체를 주관하는 백(), 다시 말하여 혼백(魂魄)을 다시 똘똘 되 새겨, 절대 자기의 생()을 포기 하거나, 자포자기는 절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우리 모두는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일이라고 나는 말 하고 싶다.

끝으로 나는 우주의 만물 중 물이 갖는 일곱가지 덕()을 적어 보며, 우리의 일상(日常)을 하나, 하나 되 새겨 보고자 한다.

첫째,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겸손(謙遜). 둘째, 막히면 돌아가는 지혜(智慧). 셋째, 구정물까지 받아 주는 포용력(包容力). 넷째, 어떤 그릇에도 담기는 융통성(融通性). 다섯째, 바위도 뚫는 인내(忍耐)와 끊기. 여섯째, 장엄한 폭포처럼 투신하는 용기(勇氣). 그리고, 유유히 흘러 바다를 이루는 대의(大儀).

우리는 이렇게 이 일곱가지 물의 미덕을 일상에서 새기며, 일생을 남부럽지 않게 오래 사신 백선엽 사성 장군님과 그리고, 김형석 교수님의 생()을 흠모해 보면서, 물처럼 바다처럼 세월이 혼란스럽지 않고, 그렇게 소리 없이 유유히 값지게 흘러가라고만 바랄 뿐이다.

나이 먹어 가는 이 아침에! 내일도 맑은 해가 우리의 세상에 새로 떠오르라고나는 마음을 모아, 오늘도 두 손 모아 기도해 본다.

 

진천신문 (jincheo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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