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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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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안시조] 손으로 책을 펼치고 어린 손자를 가르치네(題宋明府幽居) : 동악 이안눌

장희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기사입력 2022-05-3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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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시에 보인 운자를 따서, 시인의 새로운 생각과 시적인 구성으로 달리 시를 짓는 일을 [차운(次韻)한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문에 글제를 달아서 짓는 행위를 제(題)한다고도 한다.
즉 다른 사람의 글제와 같이 놓든지 글의 내용과 흐름을 보아 같은 선상에 놓은 일을 뜻한다면 다소 어긋난 일은 아닐지 모르겠다. 두어 서까래의 띳집이 솔뿌리에 의지해 있는데, 길을 지나 집에 들어서니 긴 대숲이 문을 다 가리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題宋明府幽居(제송명부유거) / 동악 이안눌

서까래의 띳집이 솔뿌리에 의지하고
흰 머리의 노인이 베개 베고 누워서
손으로 책을 펼치어 손자에게 가르치네.

數椽茅屋倚松根 逕入脩篁盡掩門
수연모옥의송근 경입수황진엄문
皤髮老翁欹枕臥 手披黃卷敎兒孫
파발로옹의침와 수피황권교아손

손으로 책을 펼치고 어린 손자를 가르치네(題宋明府幽居)로 번역해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1571~1637)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두어 서까래의 띳집이 솔뿌리에 의지해 있는데 / 길을 지나 집에 들어서니 긴 대숲이 문을 다 가리네 // 하얀 머리의 노인이 기웃이 베개를 베고 누워서 / 손으로 책을 펼치고 어린 손자 가르치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송명부유거의 시에 제하며]로 번역된다.
달리는 ‘원님 지낸 분의 띳집’이라 제(題)하기도 한다. 다산은 강진 유배 18년 동안 많은 저서를 남겼다. 특히 목민심서는 지방관이던 목민관이 지켜야 할 일과 도리를 기록하여 오늘날도 귀감이 큰 옥저다. 목민관은 그 직에 있을 때나 자리를 떠났을 때도 제일로 여겼던 것은 청빈해야 하고 인륜의 도를 지키면서 즐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시인은 이런 데 착안하여 상상이란 날개에 시심을 잔뜩 부었던 것으로 보인다. 선경의 시상에서 두어 서까래의 띳집이 다만 솔뿌리에 의지해 있는데, 길을 지나 집에 들어서니 긴 대숲이 문을 다 가리고 있었다고 했다. 긴 대숲이 문을 가릴 정도였다면 청빈을 몸소 실천했고, 도를 즐기는 학자였음을 한 마디로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다.
화자가 바라보는 명부(明府)인 목민관을 지냈던 분의 지금 상황을 보따리를 싸듯이 잘 포장해 두었다. 후정의 시상에서 하얀 머리의 노인이 기웃이 베개를 베고 누워서, 손으로 책을 펼치고 어린 손자 가르치네 라고 하여 가르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았으니 또 다른 도를 실천하는 모습이겠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솔집이 솔뿌리에 의지해 대숲이 문을 가리네, 노인이 베개 베고서 책 펴서 손자 가르치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동악(東岳) 이안눌(李安訥:1571~1637)로 조선 중기의 문신이다. 18세 진사시에 수석합격했다. 그러나 동료들의 모함을 받자 관직에 나갈 생각을 버리고 오직 문학 공부에 열중했다. 이 시기에 권필, 윤근수, 이호민 등과 교우를 맺었는데, 이들의 모임을 <동악시단>이라고 불렀다.

【한자와 어구】
明府: 목민관(牧民官)의 존칭. 幽居: 은거하는 곳. 數: 두어 개. 椽茅屋: 서까래 띳집. 倚: 의지하다. 松根: 솔뿌리. 逕入: 길이 들어서다. 脩篁: 긴 대숲. 盡掩門: 문이 다 가리어 있다. // 皤髮: : 하얀 머리. 老翁: 노인. 欹枕臥: 베개를 베고 누워있다. 手披: 손으로 펼치다. 黃卷: 책. 敎: 가르치다. 兒孫: 어린 손자.

진천신문 (jincheo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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