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두물머리가 한 눈에 내려다 뵈는 운길산(雲吉山) 맑은 곳에 흰 구름 위에 쓸쓸한 절 집 하나가 보인다. 아름다운 수종사다. 저 멀리 가을 강에 달이 밝기만 하구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의 달 밝은 한강! 주변은 조용하기만 하다. 이따금씩 고요를 깨는 풍경소리 뿐이다. 금물결 은물결이 치렁치렁 떠내려가는 정경이다. 다락에서는 잠 못 들어 고요하기가 그지없는데, 바람과 이슬만이 이 밤을 차갑게 하는구나.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보았다.
水鍾寺(수종사) / 현묵자 홍만종
구름위에 쓸쓸한 절 밝은 달은 기울고
다락위에 잠못 들어 고요한 깊은 밤에
바람에 이슬 찬 밤은 깊은 밤을 차게 하네.
蕭寺白雲上 秋江明月西
소사백운상 추강명월서
禪樓無夢寐 風露夜凄凄
선루무몽매 풍로야처처
“바람과 이슬만이 이 밤을 차갑게만 하는구나(水鍾寺)”로 번역해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현묵자(玄默子) 홍만종(洪萬宗: 1643∼1725)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흰 구름 위에 떠 있는 쓸쓸한 절 하나가 있어 / 가을 강엔 밝은 달이 서쪽에 기우는구나 // 다락에서는 차마 잠을 못 이뤄 고요하기가 그지없는데 / 바람과 이슬만이 이 밤을 차갑게 하는구나]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수종사를 보며]로 번역된다. 수종사의 밤은 한참이나 깊었다. 절집 선방 다락에 앉은 나그네도 도무지 잠이 오질 않는다. 난간에 들리는 이슬이 차다. 한기가 뼛속을 찌르는 듯하다. 찬 강물 위로 가없이 풀어지는 달빛처럼 생각이 흐른다. 나그네 잠 못 이루는 것은 뼛속을 찌르는 한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은데, 금물결 은물결이 달빛 따라 고요하게 흐는 밤이 지속되었다.
시인은 운길산을 올라 수종사에 하룻저녁을 묶었던 모양이다. 간간히 물소리가 들려오는 차가운 밤이었지만, 선경의 시상은 흰 구름 위에 떠 있는 쓸쓸한 절이 있어 가을 강엔 밝은 달이 서쪽에 기우는구나 라고 했다. 그림을 보지 않아도 한 폭의 그림이 잘 그려진 소소한 밤이었겠다.
화자의 심상은 차츰 무섭게 엄습에 오는 추위와 오한 때문에 몸을 부비는 데 또 한 소리가 더욱 차갑게 했던 모양이다. 후정이 시상에서는 다락에서는 잠 못 들어 고요하기가 그지없는데, 바람과 이슬만이 이 밤을 차갑게 하는구나 라고 했다. 자연은 추위에 잠을 설치고 있는데 잠 못 드는 이 밤을 바람과 이슬이 더욱 차갑게 했다는 시심을 만난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쓸쓸한 절 하나 있어 서쪽 달 기우는구나, 잠 못 이뤄 고요한데 바람과 이슬 차갑구나’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 현묵자(玄默子) 홍만종(洪萬宗: 1643∼1725)으로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시평가이다. 다른 호는 몽헌(夢軒), 장주(長州)로 알려진다. 정두경의 문인으로 김득신, 홍석기 등과 교류했다. 역사·설화·시 등의 저술에 전념했고, 특히 시평에 있어서 깊은 연구를 하여 많은 업적을 남겼다.
[한자와 어구] 蕭寺: 쓸쓸한 (절이) 하나 있다. 白雲上: 흰 구름 위에. 秋江: 가을 강. 明月西: 밝은 달이 서쪽에 기운다. // 禪樓: 선방의 다락. 無夢寐: 꿈결에 잠이 없다. 곧 잠을 이루지 못한다. 風露: 바람과 이슬. 夜凄凄: 밤이 차갑고 추위가 엄습해 오다. 소소하기 그지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