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기고] 선 예찬
장병학(수필가, 시인, 진천문인협회 고문)
기사입력 2023-04-27 17:01
우리는 일정한 선의 카테고리 속에서 희비애락의 연속으로 살아가고 있으며, 항시 때와 장소에 맞는 일정한 선을 향하여 저마다 삶을 향하며 살아가고 있다. 누구나 목표 지향적인 선이 그어지면 그 선까지 도달하려고 부단히 정진해가려고 노력한다.
이 세상에 수많은 선은 우리 눈에 보이는 선이 있고, 반면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선도 있다. 눈에 보이는 선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우리의 삶에 더 크게 영향을 준다는 것을 종종 깨닫게 된다.
이를 테면 부모와 자식과의 선, 형제간의 선, 부모와의 선, 친구간의 선이 각기 그어진 채 조화로운 생활이 전개된다.
서로가 지켜야 할 인륜의 선이 슬기롭게 지켜지면 사회가 보다 명랑한 웃음꽃 속에서 신뢰받는 사회생활이 이루어질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면 증오와 암투 속에서 서로가 경계하면서 물고 뜯는 암울한 세계로 만연된다.
평생 같이 사는 부부간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선이 너무도 많이 있다. 쌍방이 그 선을 열심히 지켜가야 그 가정에 웃음과 화목이 차곡차곡 쌓이게 된다. 그 선이 아내에게 지나치게 쏠려 있다면 사람들은 흔히 그 남편을 공처가라고 불러댄다.
나는 한 가정에서의 부부는 서로가 대등한 선의 위치에 있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면 아내의 일을 많이 이해하고 도와주려고 애를 쓰는 편이다.
우리는 부부교사여서 아내가 학교에서 학생들 교육에 시달리어 살림에 소홀히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신혼 초부터 이부자리 개기, 방 쓸기, 연탄 갈기, 쓰레기 분류하여 버리기 등 많은 일은 내 몫의 선으로 알고 그 선을 연중 지켜감에 우리 집 행복지수는 늘 높았다고 자부할 수 있다.
버스나 열차 안에서 젊은이가 웃어른을 공경하는 정신이 희박한 선을 가진 젊은이가 많다면 노인이 앞에 있더라도 젊은이한테서 자리 양보의 미덕을 기대하기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올곧은 가정교육을 받고 웃어른 섬기기의 바른 선을 지닌 젊은이들이 많다면 노인들에게 선뜻 자리 양보를 하는 아름다운 선율의 미덕이 베풀어지면서 차내에 있는 손님들까지 훈훈한 정감이 번질 것이다.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늘 ‘시험’이라는 선에 묶여 살아 왔지 않았던가? 학생들은 학교에서 각 교과마다 100점이란 선까지 따라잡기 위하여 언제나 노심초사하고 있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에겐 자살 소동까지 가려는 극한 단계까지 가고 있지 않는가?
전국의 고3 학생과 재수생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 긴장이 연속되는 자기와의 싸움 끝에 대학입시 때 합격의 선 안으로 들어가면 본인은 물론 학교와 집안 식구 모두가 기쁨의 도가니 속에서 축하의 잔치가 벌어진다.
하지만 그렇게 염원하며 고대했던 합격의 선 안에 미치지 못한 학생과 가정은 온 식구들이 불안과 초조감과 초상집 분위기에 휩싸일 것이다.
이차선 이상의 아스팔트길 위에는 황색 선과 백색 선이 구분되어 그어져 있다. 백색선의 차선 위로는 자동차들이 상황에 따라 마음대로 넘나들 수 있다. 그러나 황색 선을 넘는 자동차는 가파른 벼랑 위에서 굴러 떨어져 대형 사고를 일어남을 항시 머릿속에서 떠나버려서는 안 된다.
내가 근무했던 학교의 골마루와 계단의 중앙에도 황색 페인트로 반듯하게 선을 그은 후, 학생들을 그 곳에서 수시로 체험학습을 통한 교통 지도를 한 적이 자주 생각난다.
학생들에게 복도를 자동차가 무수히 다니는 고속도로로 생각하게 하여 교통 질서의식을 심어 주는 일은 교통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데 많은 효과를 가져옴은 물론 학생들의 질서의식을 유목적으로 지도해왔다.
이처럼 황색선의 위엄은 어느 도로에서든 절대 막강한 위엄을 갖고 있음을 학생들에게 스스로 인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만약에 황색선을 넘어 교통사고를 유발시켰다면 교통법규 10대 조항에 걸려 보험회사로부터 보상도 받지 못하고 형사처벌의 위험까지 주는 일이 우리 주변에 비일비재하다.
이처럼 아스팔트 황색 선은 엄청난 위력이 있다는 것을 학생들이나 성인들에게도 지속적으로 지도할 필요성을 느끼곤 한다. 나 역시 황색선을 자주 넘어 추월하려는 못된 버릇이 많은데 이 기회를 통하여 자제할 작정이다.
모든 법의 가장 근간인 헌법을 비롯하여 각종 법률도 미래지향적인 민주 사회를 형성하기 위한 법규마다 규제의 선을 엄격하게 선정해 놓았다. 많은 사람들은 갖가지 법규의 선을 정확히 지키면서 열정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본의 아니게 그 선을 못 지켜 범죄자로 고발되면서 비련한 삶으로 살아야함을 직시해야 한다.
이처럼 자그마한 선 하나하나가 사람들을 착하게 만들 수도 있고, 때로는 악하게 만들 수도 있는 위대한 힘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반세기 동안 허리가 동강난 채 남과 북으로 갈라놓은 선 때문에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고 있다. 그리고 지구촌에서 지금도 가장 슬픈 민족으로 쓰라린 고통과 아픔의 진통은 계속되고 있다.
우리나라 허리의 선을 잘라 놓음으로써 반세기가 넘도록 같은 민족끼리 만나지도 못하고 이질적인 삶을 살아가야 되는 아픔을 생각하면 울분이 치솟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겉으로는 평화통일이니 하면서 우리 대한민국을 무력으로 송두리째 삼키려고 두더지처럼 선(땅굴)을 파 내려오는 파렴치한 비인간적인 행동에 통탄하지 않을 수 없다.
뒤늦게나마 남북의 정상들이 만나는 계기의 물꼬가 트였으니 남과 북이 대치하여 전쟁을 중단하고 있는 휴전선은 하루 빨리 이 땅에서 살아지기를 온 국민은 염원한다.
내가 군복무시 최전방에서 비무장지대의 서부지역에서 철통같이 얽혀진 철책선을 지키려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잠복근무를 하였다. ‘졸면 죽는다’라는 구호를 항상 생각하며, 경계 근무를 해냈던 군 시절이 이따금씩 새록새록 떠올려짐은 웬일일까?
반세기가 지나도록 눈에 안 보이는 휴전선은 왜 지우지 못할까? 생각하면 할수록 몸서리 쳐지며 두 주먹이 불끈불끈 쥐어질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우리 인간의 나이도 숫자의 선으로 이어져 가고 있다.
10대, 20대, 30대를 지나 불혹의 선, 지천명의 선 등으로 향하는 것도 인륜의 법칙이 아닌가? 우리의 인생은 그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일정한 선으로 이어져 가고 있지 않는가?
주위의 여러 가지 선들은 우리들에게 기를 형성시켜 주기도 하고 성취의욕을 심어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때로는 우리를 좌절과 곤혹스런 슬픔의 도가니 속에 빠뜨리기도 하니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선은 위대한 존재이기도 하다.
항상 기쁨, 건강, 아름다움, 희망, 꿈을 가득히 심어주는 눈에 보이던 선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선들이 우리 주위에 맴돌기를 기대하며, 항상 올곧고 생동감 넘치는 아름다운 선만을 그려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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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 시와 의식(문예한국) 수필(1986), 한국아동문학연구회 동시 등단(2002)
- 한국교육총연합회 주최 ‘전국대학생수필공모대회’ 심사위원장
- 충북수필문학회장, 청주문인협회 회장, 충북글짓기지도회장, 중부문학회 회장
-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충북위원회 회장
- 현) 국제PEN클럽 한국본부 자문위원, 한국아동청소년문학협회 충북회장, 한국아동문학회 중앙위원장, 한국문인협회 전통문학연구위원, 충북아동문학회 고문, 충북펜문학 고문, ‘대한민국 직지문화예술 콘서트’ 추진위원장, 직지예술연합회장, 충청타임즈 칼럼 연재.
진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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