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진 들녘에 내가 서 있다.”
이제 세월이 흘러 내가 자란 옛 고향, 죽마고우(竹馬故友) 선배들이나 동생뻘 되던 몇 안 되는 친구들이나 집 안 아제, 형, 동생, 대부 등 많은 사람들이 세상을 하직하고, 이제 내 나이 팔십을 넘어 석양에 노을이 드리우고 있다.
옛 어릴 적 놀던 옛 생각이 난다.
동리 안골 맨 윗 곳 할미 할머님 댁 마당이 안골 동리에서는 제일 넓은 마당이었다.
우리는 그 곳에 모여 땅따먹기나, 술래 놀이나, 자치기 놀이, 공치기 놀이 등을 하였었다.
술래 놀이는 변소 간, 헛간 등을 이용하여 숨은 사람 찾기 놀이이며, 땅 따먹기 놀이는 여자 아이들이 즐겨 하는 놀이이었다.
우리는 자치기 놀이를 많이 즐겨 하였다.
작은 자를 나무 막대로 힘껏 쳐서 멀리 나가게 한 후, 그 것을 원 안으로 던져서 원안의 우리 편이 받아 내면, 그 선수는 게임 아웃되어 다음 타자에게 인계하게 되는 것이며, 원 안에 떨어졌을 때는 자를 막대로 치는 기회를 한 번의 기회, 원 밖에 떨어졌을 때는 세 번의 기회를 주었다.
자를 막대로 쳐서 떠 오른 자를 힘껏 막대로 후려 쳐서, 멀리 나갈수록 멀리 나간 거리를 막대 자로 재어 그 값을 보태고, 또 보태어 승패(勝敗)를 가름하던 놀이 이었다.
놀이에는 언제나 승부가 걸린 것이었으며, 그 승패(勝敗)에 집착하여 한 팀이 온 힘을 다하여 상대방에게 승리를 쟁취하려 몰두하는 게임 이었다.
그 게임에 지고 나면 밥맛도 없으려니와 어째든 한 팀이 똘똘 뭉쳐 승부에 집착하며 해 지는 줄 모르는 게임이었다.
상대방과 너무 값이 차이가 많이 나서 승산이 없으면, 멀리 친 편의 자를 양쪽 팀이 서로 찾다가 진편 팀의 어느 누구가 자를 남 몰래 보이지 않게 숨겨 놓고 자 값 타령을 했던 일도 있었다.
그 자 값이 자그마치 만(萬) 자 인 것이다. 만(萬)자는 일만 만(萬)자에 그 값을 만(萬)으로만 치부하지 않고, 아무도 따라 잡지 못 할 만큼의 많은 자 값으로, 결국은 승리(勝利)는 자를 멀리 쳐서 승리를 이끈 쪽이 아니라, 자를 쳐서 잃어버리게 한 쪽이 승리(勝利)에 진 결론이 된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를 잃어버리게 한 팀이 결국은 지게 된 것이다.
이 일은 자연의 순리로 찾지 못한 일로 승부를 가린 것이지 일부러 숨겨 놓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자 값을 만(萬)자로 쳐서 진편에게 승부(勝負)를 뒤 엎은 일은 나름대로 통쾌함을 가진 듯도 하다.
이 모든 것은 어릴 적 잊지 못 할 옛 추억(追憶)이다.
지금도 그 자 값이 만(萬) 자 인 것은 틀림없는 기정사실(旣定事實)이다.
그 누구도 부인 못 할 정 해진 자 값인 것 이었다.
‘자 값 만(萬) 자.’
자치기 놀이에 해가 지고, 헛간이나 변소 간을 돌며 숨바꼭질 하던 놀이, 땅 따먹기 놀이 등 그 옛날 어릴 적 놀이가 새삼 생각이 난다.
그 옛날 해가 질 때까지 승부(勝負)에 집착하며 놀 던 그 옛날의 놀이!
옛날의 친구들!
이제는 모두가 다시 오지 않는 흘러 간 옛날이며, 해는 서산에 지고, 땅 따먹기, 자치기 놀이는 이제 멀리 지나간 옛 생각에 불과하다.
‘자 값 만(萬) 자!’
한 없이 즐겁고, 한 없이 당(當)차고, 아무 것도 부러울 것이 없던, 즐거운 어릴 적 옛 추억(追憶)!
사람, 살고 죽음이 모두 다 그런 것 이런가?
자 값 만(萬) 자만 어렴풋이 새 삼 떠오른다.
‘자 값 만(萬) 자.’
내 어릴 적 놀 던, 내 옛 날, 내 옛 생각!
2023년 5월 12일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