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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3-09-2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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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안시조] 수면을 스치며 한 겹 바람이 슬며시 불어오네(蓮池): 삼연 김창흡

장희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기사입력 2023-05-25 1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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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이 살고 있고 물이 고여 있는 곳을 연못가라고 했다. 그러나 물이 고여 있는 조그마한 곳이면 두루 연못이라고 하고 있다.
저녁식사를 마치자마자 가족이 나들이를 나오면 연못가를 한 바퀴 돌면 물기운이 몸에 스며든 기분이 상쾌하다. 공원을 한 바퀴 도는 기분도 더없이 상쾌하여 우리의 생활이 되어 버린 연못가의 일상 심회는 컸겠다.
연못가에 가만히 앉아 있으면서 나무 하나를 주워 가벼운 물결 위에 띄워보냈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蓮池(연지) / 삼연 김창흡

적적한 연못가에 고요히 있노라니
수면에 스쳐가는 바람이 불어오고
고림목 나뭇잎들은 물결 위에 흐르네.

寂寂臨池坐 風來水面過
적적임지좌 풍래수면과
高林有病葉 一箇委微波
고림유병엽 일개위미파

수면을 스치며 한 겹 바람이 슬며시 불어오네(蓮池)로 번역해본 오언절구다. 작가는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연못가에 가만히 앉아 있노라니 / 수면을 살짝 스치며 한 겹 바람이 슬며시 불어오네 // 병들어 떨어진 나뭇잎이 땅에 굴러다니며 있기에 / 그 중에 하나를 주워서 가벼운 물결 위에 띄워보낸다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연못가에서]로 번역된다. 연못가에 앉아서 시상을 떠올린 상당한 시를 만난다. 연못과 살면서 대화하는 시. 밤에 잠을 자지 않고 얼굴을 내밀고 있다는 시. 바람 한 겹에 살짝이 미소를 짓는 시. 그 미소가 연못 속에 연뿌리까지도 미쳤을까 상상하는 시, 그렇지 않으면 찡그리는 시들을 상상해 냈다. 이런 시들은 시인의 상상에 의한 소산물이다.
여러 가지 상황을 상상해 낸 시인은 스치는 바람 한 겹을 안은 가벼운 시심을 이끌어 냈다. 선경의 시상은 연못가에 가만히 앉아 있노라니, 수면을 살짝 스치며 한 겹 바람이 슬며시 불어왔다고 했다. 바람이 불면 수면은 작은 미소를 지면서 어떤 행위를 해달라는 애원쯤은 했을 것으로 상상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화자는 그 미소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겠다. 후정의 시상은 잎마름병 같이 병이 들어 떨어져 있는 나뭇잎 하나를 주워서 가벼운 물결 위에 띄워보냈다는 아주 작은 행위로 연못과 대화해본다.
무엇이라 화답했을까? 심심한데 잘 되었다고 했을까. 병든 나뭇잎을 어루만져 주고팠다고 했을까. 아니면 병든 잎은 싫다고 했을까 상상을 엇갈린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연못가에 앉았더니 수면 살짝 바람 부네, 나뭇잎에 땅에 굴러 물결 위에 띄어보네’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으로 조선 후기의 학자이다. 좌의정 김상헌의 증손자이고, 아버지는 영의정 김수항이며, 어머니는 안정나씨로 해주목사 나성두의 딸이다. 형은 영의정을 지낸 김창집과 예조판서, 지돈녕부사 등을 지낸 김창협이다. 시호는 문강(文康)이다.

[한자와 어구] 寂寂:고요하고 고요하다. 臨: 임하다. 곁에 있다. 池坐: 못가에 앉다. 風來: 바람이 불다. 바람이 오다. 水面過: (바람이) 수면 위를 지나다. // 高林: 높은 숲. 有病葉: 병든 나뭇잎이 있다. (곧 떨어진 낙엽이 이다). 一箇: 한 개. ‘個’와 동자임. 委微波: 가벼운 파도에 맡기다. 잔잔한 파도에 띄어 보내다.

진천신문 (jincheo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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