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주시 오창읍 성산리 산골에는 정원이 아름다운 카페가 있다. 공무원 출신 지인이 직접 조성한 곳으로 의례적으로 찾았다. 청주 시내에서 내비게이션을 의지하여 찾아갔지만 농로로 들어서야 할 곳에서는 안내가 끊어져 전화로 물어서 도착했다. 언젠가 퇴직자들 모임이 있을 때 그 친구가 앞에 나가서 하던 말이 생각난다.
“퇴직하면 명함이 없어져요. 그래서 저는 명함을 만들었어요. 정원을 만들고 있어요.”
그 정원의 대표로 명함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깊이 새겨듣지 않았다. 얼마 후 ‘숲이 그린 정원’ 카페를 개업했으니 옛이야기 나누는 공간으로 이용하시기 바란다는 안내문을 보내왔다. 내나 그 친구나 젊어서부터 같은 직장에서 정년에 이르도록 근무하고 퇴직했으니 생각하는 것이 나와 거의 같을 텐데, 어떻게 카페 만들 생각을 했을까 하며 노후 준비로 하는 보통의 사업장이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고 하니 직장생활의 오랜 인연으로 반가워서라도 바로 찾아봐야 했으나 수개월 후에나 가게 되어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시골길을 가로지르는 2차선 도로에서 농로로 1㎞는 더 들어가는 비산비야 오지에 16년여 전 750평 땅을 샀다. 월급쟁이가 부채 없이 사느라 공제도 해약하면서 어렵게 장만했다고 한다.
정원은 좁고 긴 농로의 중간쯤, 북쪽 높지 않은 산에서 내려뻗은 산비탈에 있다. 카페가 위치한 곳은 볼록 솟아 있고 좌우는 작은 골짜기다. 그 앞은 진입로와 주차장, 농로가 내려다보인다. 길 아래는 작은 저수지다. 저수지 건너는 낮은 산들이 겹겹으로 볼록볼록 평온하게 보인다. 이 농로는 서쪽의 높지 않은 산들이 둘려있는 곳으로 이어지는, 아늑하고 쉬어 가고픈 곳이다.
10여 년 전부터 계획을 세우고 정원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진천에 논을 사서 흙을 받아 밭으로 만들고 정원수를 가꿨다. 기본 구상 아래 정원수 한 그루 한 그루를 옮겨가면서 한 땀 한 땀 만들었다. 특별한 조경수를 매입하기도 했지만, 큰돈을 들일 필요가 없었다. 6년 전 직장에서 명예퇴직한 후 본격적으로 가꾸기 시작했다. 농로에서 카페로 올라가는 길과 맨 위쪽, 커피숍 지을 자리를 비워놓고 그 밑으로 정원을 먼저 조성했다.
정원은 300여 평, 비탈진 땅을 여러 쪽으로 나눠 길을 만들고 잔디를 심어 폭우 시 흙 유실을 방지하고 손님들이 산책할 수 있도록 했다. 토지 경계에는 블루에젤(억새)을 심어 산속을 걷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정원 내의 산책로는 고깔을 닮은 에매럴드골드(향나무)와 모닝글라스(측백나무)를 양쪽으로 총총 심어 이국적 풍경을 맛보게 했다. 정원 가운데에는 고목 소나무와 향나무를 심고 큰 돌을 놓고, 조경용 소나무, 각종 정원수를 심어 운치를 돋우고, 수국 등 가지가지 꽃나무를 심고, 구근류도 심어 산책하면서 감상하도록 배려했다. 정원수 아래 땅바닥에는 패랭이, 백리향, 맥문동 등을 심어 사철 푸르게 하고 흙의 유실도 방지하고 있다. 정원에 어울리는 건물을 지어 카페를 개업했다. 정원 아래쪽에 분관도 지었다.
잘 가꾸어진 한 폭의 그림이다.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은 비탈진 정원, 좁은 잔디 산책길을 둘이 손잡고 거닐어도 괜찮은 구성이다. 자그마한 규모지만 가꾸는 사람의 정성이 우러나고, 볼거리가 있고 운치가 있어서인지 청주에서는 물론 세종, 천안, 대전에서도 찾아오는 사람들이 꽤나 많다고 한다. 시간이 많은 풍류객이나 틀에 박힌 도시 생활에서 잠시 벗어나고픈 사람들이 찾을 것이다. 또 사랑하는 연인들이 조용하고 볼거리가 있는 곳을 찾아 추억을 남기고 갈 것이라 생각된다. 내가 방문했을 때도 테이블 여러 개가 꽉 차 있었다. 정원 곳곳에 테이블이 있어서 정담을 나누기에는 이만한 곳이 없을 성싶다.
공직 은퇴자가 손수 만든 정원이다. 미리미리 준비하고 시에서 관광농원으로 허가를 받고 장기 저리의 정책자금도 활용하며 재정적 부담 없이 개업했다는 사실에 참 대단하다는 찬사를 보낸다. 커피숍을 지을 때 그의 아내는 이런 오지에 누가 오겠느냐고 반대를 했다고 한다. 차가 다니는 큰길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는 곳이니 지나가다 잠깐 들러 갈 곳은 못 된다. 누가 봐도 당연한 의견이다. 그러나 입에서 입으로 소문이 나서 손님들이 먼 길을 시간을 내서 찾아오고, 그치지 않으니 그 선견지명 또한 보통 사람들의 추종을 불허한다.
카페가 위치한 곳은 그 주변 자체가 자연공원이다. 카페는 대자연 속의 점 하나 일뿐이지만 한 사람의 톡 튀는 아이디어와 정성스러운 손길은 자연 속에 아름다운 꽃을 피웠다. 숲이 없으면 그 꽃은 빛을 낼 수가 없다. 숲속에 있는 아름답고 안락한 안식처, 숲속에 있어서 더 빛나는, ‘숲이 그린 정원’이다. 충청북도에서 민간정원17호로 등록을 했으니 필설로 다 그리기에는 애초부터 어려운 아름다운 정원이다. 이 카페가 숲이 아니고 들녘에 있었으면, 도심에 있었으면 많은 사람이 찾고 감동을 받았을까? 매운 고추를 더 매운 고추장에 찍어 먹는 것에 비유할까? 엉뚱한 상상을 해본다.
일찍 깨닫고 차질 없이 준비했다. 퇴직한 사람들은 대개가 할 일이 없어 쉬는 게 다반산데 이렇게 멋진 일을 하고 있으니 내 일처럼 좋아서 “이런 퇴직공무원도 있어” 하며 자랑하고 다닌다. 또 무슨 사업을 구상하고 있지는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다. 이런 사장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높은 이상을 가지고 미리미리 준비해서 제2의 인생에 결실을 보는 사례가 늘어나도록 널리 알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