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최종편집일 2026-09-21 18:34

  • 오피니언 > 장희구의 번안시조

[번안시조] 이웃의 남들이 나의 진심 어찌 알리오(貧女吟)②: 허난설헌

장희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기사입력 2026-02-26 18:49

페이스북으로 공유 트위터로 공유 카카오 스토리로 공유 카카오톡으로 공유 문자로 공유 밴드로 공유
0
조선 여인이 하는 일중 김쌈을 으뜸으로 삼는 것 중에서 사대부의 옷을 주문 맡아다가 손수 마련하는 일이 큰 분야를 차지했다. 여름에는 삼베나 모시베 옷을, 겨울에는 무병베나 명주베 옷을 기우는 일이 그것이다. 정확한 품과 폭을 알아서 자로 재고 재단하여 시침 뜨는 일을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가운데 품을 파는 여인은 부모님은 내 처지를 가엽다고 생각하지만 하루 내내 창가에서 베만 짜고 있다네 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貧女吟(빈여음)② / 허난설헌

굶주려도 내색 않고 창가에서 베만 짜고
부모님은 내 처지가 가엽다고 생각 하나
남들이 이웃인 나를 진정 어찌 알리오.

不帶寒餓色 盡日當窓織
불대한아색 진일당창직
唯有父母憐 四隣何會識
유유부모련 사린하회식

“이웃의 남들이야 나를 어찌 알 수 있으리오(貧女吟)”로 제목을 붙여본 오언배율의 둘째수다.
작자는 난설헌(蘭雪軒)으로 알려진 허초희(許楚熙:1563~1589)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춥고 굶주려도 얼굴 표정엔 내색도 하지 않고 / 하루 내내 창가에서 베만 짜고 있다네 // 부모님은 내 처지를 가엽다고 생각하지만 / 이웃의 남들이야 나를 진정 어찌 알리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가난한 여인의 노래2]로 번역된다. 가난은 누구의 탓도 아니다. 전제군주 사회에서나 일부 사회주의 국가에서 민중을 삶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위정자나 고위직 공무원을 제외하곤 모두가 가난한 삶이었다. 노래가 있어도 부르지 못했고, 음악이 있어도 듣지를 못했다. 입이 없어서, 귀가 들리지 않아서가 아니다. 부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당시 사회의 제도이고 관습이었다.
시인은 이런 시대적인 상황에서 질곡의 세월을 살았다. 그리고 연만한 나이에 시집도 가지 못하고 삯바느질만 했다. 그래서 춥고 굶주려도 얼굴 표정에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하루 내내 창가에서 베만 짜고 있다네 라고 했다. 남의 처자 시집가는 것이 얼마나 부러웠으면 이런 생각까지 하면서 시상을 일으켰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화자의 후정은 더욱 두터운 옷베로 자기 처지를 감싸 안았다. 부모님은 내 처지를 가엽다고 생각하지만, 이웃의 남들이야 나를 진정 어찌 알리오 라고 했다. 가까운 부모님은 자기 처지를 알고 가엽게 여기지만 이웃이 그 깊은 속을 알 수 없다는 시상이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추위 굶주림 내색 않고 창가에서 배만 짜니, 가엽게 여긴 내 처지 진정 모른 남들 마음’라는 시인의 상상력과 밝은 혜안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 허난설헌(許蘭雪軒:1563~1589)으로 조선 중기의 여류시인이다. 본명은 초희(楚姬), 별호는 경번(景樊)이다. 명종 18년(1563년) 강릉에서 출생했다.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의 누나이다. 이달에게 시를 배워 8세 때 이미 시를 지었으며 천재적인 시재를 발휘했다.

[한자와어구] 不帶: 띠지 않는다. 내색하지 않다. 寒餓: 춥고 굶주리다. 色: 얼굴 빛. 盡日: 하루 종일. 當: 당하다. ~을 하다. 窓織: 창가에서 베를 짜다. // 唯: 오직. 有: ~있다. 여기다. 父母: 부모님. 화자의 부모님. 憐: 가엽다고 여기다. 四隣: 이웃의 남들. 何: 어찌. 會識: 알다. 모두 알다.

진천신문 (jincheonnews@hanmail.net)

댓글0

스팸방지코드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