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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편집일 2026-09-21 1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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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안시조] 오직 보배로만 여길 뿐 사람에겐 전할 수 없네(絶句): 성재 최충

장희구(시조시인·문학평론가)

기사입력 2026-08-3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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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이는 훗날 이 절구시를 ‘만정월색(滿庭月色)’이라 바꾸어 보기도 했다. 집안 뜰 안에 고요하게 비치는 달빛을 보면서 읊었기 때문이리라.
고려시대 사설학교를 설립하여 학생들이 구름과 같이 몰려들어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한다. 해동은 ‘발해의 동쪽’이란 뜻으로 곧 우리나라를 지칭하는데 [해동공자]라 했다면 학문과 교육방침이 얼마나 컸던가를 짐작한다. 정원에 비치는 고요한 달빛을 보면서 혼자 보배로만 여길 뿐이라고 읊었던 시 한 수를 번안해 본다.
 
絶句(절구) / 성재 최충

달빛은 가득하여 연기 없는 촛불이요
자리 드는 산 빛은 초대 않은 손님인데
사람에 전할 수 없는 곡 소나무가 연주하오.

滿庭月色無烟燭 入座山光不速賓
만정월색무연촉 입좌산광불속빈
更有松絃彈譜外 只堪珍重未傳人
갱유송현탄보외 지감진중미전인

오직 보배로만 여길 뿐 사람에게 전할 수 없네(絶句)로 번역해 본 칠언절구다.
작가는 성재(惺齋) 최충(崔沖:984∼1068)이다.
위 한시 원문을 의역하면 [뜰에 가득한 달빛은 연기 없는 촛불이요 / 자리에 드는 산빛은 초대하지 않은 손님이네 // 또 다시 소나무 현이 있어 악보 밖의 곡을 재미있게 연주하느니 / 다만 보배로이 여길 뿐 사람에겐 전할 순 없네]라는 시심이다.
위 시제는 [절구를 지으며]로 번역된다. 고려사회는 현종 대를 거치면서 거란의 침입과 숭불정책으로 유학에 대한 관심이 약화되고 관학인 국자감 교육은 부진한 상태였다. 이에 최충은 관직에서 물러난 후 유학의 보급과 유교적 지식에 밝은 관리 양성을 목적으로 사숙(私塾)인 9재학당을 개설했다. 사립교육을 강조하던 작자도 소나무 현이 악보 이외의 곡을 연주하는 것이 시적이 배경이 되고 있다.
시인은 절구 한 편을 지으면서 그저 달빛, 산빛, 솔바람 소리 이 세 마디면 족히 자기 혼자 가지고 싶은 깨끗한 자연을 이루어진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달빛 산빛을 빗대게 된다. 소나무 현이 아름다운 곡을 연주하니 보배로만 여길 뿐 사람에게 전할 수 없음도 탄식한다.
화자는 달빛은 연기 없는 촛불이요, 산빛은 초대하지 않는 손님이며, 소나무 현이 있어 멋진 곡을 연주하지만 사람에겐 전할 수 없다는 비유법을 쓴다. 그러나 이를 바르게 전할 수 있는 대상이 없음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백아절현을 아련히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이것이 문학이요, 시적 감흥이란 생각을 할 때 큰 스승을 대하는 듯하다.
위 감상적 평설에서 보였던 시상은, ‘뜰의 달빛 촛불이요 자리 산빛 손님이네, 소나무 현 악보 손님이니, 보배로만 여길뿐’이라는 시인의 상상력을 통해서 요약문을 유추한다.

[작가] 성재(惺齋) 최충(崔沖:984∼1068)으로 고려 전기의 문신이다. 다른 호는 월포(月圃), 방회재(放晦齋)라고 전한다. 사학12도의 하나인 문헌공도의 창시자다. 글씨와 문장에 크게 뛰어났으며 <고려사> 열전에 의하면 해동공자로 널리 추앙되었다. 문집 <최문헌공유고>가 전한다.

[한자와 어구] 滿庭: 뜰에 가득하다. 月色: 달빛. 烟燭: 연기라는 뜻. 無烟燭: 연기 없는 촛불. 入座: 자리에 들다. 山光: 산빛. 不速賓: 초대하지 않는 손님. // 更: 다시. 有松絃: 소나무현이 있다. 彈譜外: 악보 밖의 곡을 연주한다. 只: 다만. 堪珍重: 보배로만 여기다. 未傳人: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없다.

진천신문 (jincheon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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